Books

악보'들'

2025. 2. 26.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그의 책 『어느 개의 연구』에서 합창하는 개들을 등장시킵니다.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고,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들은 줄곧 완강하게 침묵했다. 그러면서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 음악을 만들어내는 마술을 부렸다.””하지만 너 자신도 개야. 너한테도 개의 지식이 있어. 그러니 그걸 밝혀. 질문의 형태가 아니라 답변의 형태로. 네가 그걸 밝힌다는데 누가 말리겠어? 개 종족 전체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합창으로 환영할거야.” ”우리는 모든 질문에 저항한다. 자신이 던진 질문에도. 침묵의 방벽. 그것이 우리다.”

이 합창은 푸가(Fugue)를 연상시킵니다. 푸가는 바로크 시대(Baroque, 17, 18세기 유럽의 예술 양식) 음악 양식입니다. 한자로는 ‘둔주곡(遁走曲)’이라 부르는데, 달아날 둔, 달릴 주, 굽을 을 붙입니다. 푸가는 마치 돌림 노래처럼, 한 성부를 뒤따라오는 다른 성부가 모방을 하며 곡을 전개시켜나가는 문법입니다. 개(들)은 완강한 자세로 침묵을 합창합니다. 이 개들의 합창은 질문의 형태가 아닌 답변의 형태입니다. 음악가 개들, 그들의 종족 전체는 침묵으로 환영하며 답변을 둔주곡, 즉 달아나면서 동시에 변주하는 방식으로 합창을 합니다. 책을 읽다 문득 이 합창에는 악보가 있을까 궁금해 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글렌 굴드(Glenn Gould, 1932-1982, 캐나다)를 생각했습니다. 굴드는 20세기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동시에 그는 괴짜로 유명합니다. 괴팍한 성격, 신체적 고통, 병 같은 말도 그를 따라 다닙니다. 그는 서른 이후 관객이 있는, 실시간으로 공기와 시간을 타고 관객에게 소리가 가 닿는 공연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녹음에만 집중합니다. 굴드에게 푸가는, 반복과 화답, 그리고 선과 선을 잇는, 시간과 시간을 잇는 것입니다. 멜로디는 반복을 통해 자신을 유지하고, 다음 화성이 앞의 화성에 응답하며 화답한다. 그러면서 연주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을 무로 여기고 하찮은 것으로 아는 것이다. 목소리들은 태어나 반드시 서로 화답하며, 하나의 목소리에 의해 말하여진 것은 또 다른 목소리에 의해 반복된다. 모든 멜로디들은 반복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한다. 푸가를 연주한다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잡다한 주관성을 버린다는 것. 주제와 부주제를 만들어나가지 않고 연주 속에 몰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미셸 슈나이더, 이창실 옮김, 동문선, 2002, 157쪽.)

굴드는 베토벤의 <협주곡 2번>의 첫 악장의 음을 더 가볍고 더 예리하게 만들기 위해 우나 코르다로 연주했다. 그는 자신의 베토벤 녹음이 슈나벨의 녹음처럼 빈약한 배음을 지니기를 바랐을 것이다. 이에 대해 그의 음향 담당 기사는 “장거리 전화 때 수화기를 통해 들려 오는 소리를 들으면 되겠군요”라고 대답했다. 음악을 통해 타인과, 또 자기 자신과 소통하는 굴드의 물리학과 형이상학의 본질을 꿰뚫은 이 답변을 나는 좋아한다. (같은 책.)

굴드에게서 잠깐 나와 다시 개들에게 돌아가 볼까요? 음악가 개들은 침묵하며 아무 것도 없는 공간에서 음악을 만들어내는 마술을 부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생각나는 악보가 있습니다. 바로 이 악보인데요. 붉은 벽돌 앞으로 오선지가 그려져 있습니다. 벽돌과 벽돌을 이어주는 시멘트의 무늬는 오선지 위에서 악보가 됩니다. 이 악보의 이름은 Bricks for six입니다. 프레드 프리스(Fred Frith)의 Stone, Bricks, Glass, Wood, Wire(1992-95)라는 앨범에 있는 곡입니다. 이렇게 그래픽으로 그리는 악보를 Graphic notation, 혹은 Graphic score 그러니까 ‘그래픽 표기법’ 혹은 ‘그래픽 악보’라고 부릅니다. 시각적 기호를 사용해 음악을 표현하는 기법입니다.

개들의 침묵을 연상시키는 4:33(4:33이라는 노래를 들어 보셨나요? 4분 33초 동안 오케스트라는 침묵을 연주합니다. 침묵을 침입해 들어오는 기침 소리, 웅성거리는 소리, 속닥거리는 소리 등이 음악이 됩니다. 존 케이지는 『개들의 노래』를 떠올리며 그 무엇도 그려지지 않은 악보를 만들어 냈을까요?) 작곡 8년 후, 존 케이지(John Cage)는 퍽 유명한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케이지는 1960년에 미국 텔레비전 프로그램 〈I Got a Secret〉에 출연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물을 연주합니다. 이 영상은 녹화되어 마치 굴드의 장거리 전화처럼 2025년의 우리와 선이 이어집니다. 존 케이지는 그림으로 그려진 악보를 따라, 거기에 적힌 시간과 행위를 수행하며 음악을 연주합니다. 아니, 생선을 그랜드 피아노 위에 올려 두고, 욕조에 넣습니다. 압력 냄비의 김을 뺍니다. 욕조에서 물을 뜹니다, 꽃을 욕조에 넣고 물을 줍니다. 이렇듯 일상의 행위를 무대에서 반복하며 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소리들은 서로 섞이며 악보와 시간을 수행합니다.

위: 존 케이지의 water walk 악보. 적혀 있는 시간과 행위에 따라 공연자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했다.

아래: 존 케이지가 그린 무대

악보와 함께 재생되는 존 케이지의 무대.

굴드는 캐나다 공영 방송국(CBC)에서 PD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북쪽의 관념(The Idea of North)〉이라는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굴드는 다큐멘터리에서도 푸가의 기법을 이용합니다. 세 사람의 말을, 마치 카페에서 앉아서 듣는 것처럼 동시 녹음을 합니다. 굴드는 사람을 싫어했지만 가끔 커다란 외투를 입고 카페에 가서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말하는 것을 엿듣는 취미가 있었습니다. 북쪽의 관념에서는 굴드의 북쪽의 풍경과 서로 응답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동시에 재생됩니다. 굴드는 음악이 장거리 전화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좋아했습니다. 연주와 전화는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그에게 음악과 장거리 전화는 “멀리 있는 둘 사이의 단순한 진동. 두 존재를 만나게 해주는 작은 소리가 흐르는 선”이 되었습니다. 여러 소리가 섞이고 반복되는 삶 속에서 굴드의 음악처럼 단순한 진동 같은 것들이 어느새 침입해 오는 것 같습니다.

이 글에서 등장하는 책
미셸 슈나이더,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프란츠 카프카, 어느 개의 연구

이 글에 등장하는 사람
글렌 굴드
존 케이지
프레드 프리스
프란츠 카프카

이미지 출처
정간보: 우리역사넷(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m/view.do?levelId=km_025_0040_0010_0050)
Aurelian of Réôme: DOC, Graphic notation: a brief history of visualising music (https://www.doc.cc/articles/graphic-notation)
바흐 푸가: 위키피디아, 음악적 헌정(https://ko.wikipedia.org/wiki/음악적_헌정)
score / mise en scene for Water Walk (1959) : flying the cage, When Popular TV Met The Avant-Garde, https://thoughtstheory384989225.wordpress.com/2021/10/20/when-popular-tv-met-the-avant-garde-john-cage-performing-water-walk-for-nbcs-ive-got-a-secret/
존 케이지의 악보: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파일:John_Cage,_Water_Walk.png)
brick of six: From 'Stone, Brick, Glass, Wood, Wire (Graphic Scores 1986 - 96)’

-SB